가상자산 시장의 핵심 인프라: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개념과 역할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개념과 역할
시장조성자(Market Maker)는 특정 자산의 매도·매수 주문을 상시로 제시하여, 해당 자산의 거래가 끊기지 않도록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참여자를 말합니다. 시장조성자는 호가창에 매도호가와 매수호가를 동시에 쌓아두고, 투자자가 어느 쪽으로 주문을 넣더라도 즉시 상대 주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로 인해 투자자는 원할 때 사고팔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게 되며, 시장조성자는 그 대가로 매도·매수 가격 차이(스프레드)와 거래 수수료 리베이트 등을 통해 수익을 얻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 유동성이란 “투자자가 거래를 하고자 할 때 공정한 가격에 낮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매매할 수 있는 정도”이며,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점에서 시장조성자의 역할은 단순한 트레이딩이 아니라 구조적 기능에 가깝습니다.
시장조성자가 수행하는 핵심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매도·매수 호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호가 스프레드를 좁힘으로써 거래비용을 낮추는 기능입니다. 이는 투자자가 시장에 참여할 때 부담하는 숨은 비용(슬리피지)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둘째, 자신의 재고를 활용해 대량 주문이 들어올 때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 장치 역할입니다. 셋째,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함으로써 가격 발견 과정에 기여하는 역할입니다.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라는 용어는 이보다 넓은 개념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모든 주체를 포괄합니다. 전통 주식시장에서는 일정 자격을 갖춘 증권사가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며, 크립토의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는 개인 투자자나 기관이 토큰 쌍을 유동성 풀에 예치해 거래를 활성화하는 참여자도 유동성 공급자로 간주됩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거래소와 증권사가 계약을 맺어 활동하는 주체를 ‘시장조성자(MM)’, 상장법인과 증권사가 계약을 맺어 특정 종목 유동성을 보강하는 주체를 ‘유동성공급자(LP)’로 구분하지만, 두 제도 모두 저유동성 종목에 대해 매도·매수 양방향 호가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갖습니다.
즉, 시장조성자는 특정 조건을 가진 전문 유동성 공급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동성 공급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지만, 시장조성자는 거래소 혹은 감독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일정 수준의 호가 의무, 스프레드, 물량, 시간대 등을 사전에 약정하고 활동한다는 점에서 보다 제도화된 형태의 유동성 공급자입니다.
반면, 시장에서 종종 혼용되는 이른바 ‘시장조작자(Market Manipulator)’는 거래량 부풀리기·가격 펌핑 등 시세조종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아, 제도권 내에서 규율되는 시장조성자와는 목적과 행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 금융시장에서의 시장조성자 및 유동성 공급자의 기능
전통 자본시장에서는 시장조성자 제도가 오래전부터 제도권 안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주식시장, ETF 시장, 파생상품 시장 등에서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증권사들이 시장조성자 또는 유동성 공급자로 참여하여, 거래가 부진하거나 유동성이 낮은 종목에 대한 상시 호가 제공 의무를 부담합니다.

거래지원 초기 변동성이 크고 거래가 불균형한 종목, 혹은 이미 거래지된 지 오래되었지만 투자자 관심이 낮아 거래가 드문 중소형주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자연스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때 시장조성자가 개입하여 일정 범위 이내의 스프레드로 매도·매수 호가를 동시에 제시하면, 투자자는 원하는 시점에 매매를 실행할 수 있고, 종목 자체에 대한 신뢰와 접근성이 높아집니다.
시장조성자는 이를 위해 통상 거래소 혹은 감독기관과 계약을 맺고,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담합니다:
- 일정 시간 이상 호가를 유지할 것
- 매도·매수 스프레드를 일정 비율 이하로 유지할 것
- 최소 호가 수량을 충족할 것
대신 거래소로부터 거래 수수료 감면, 리베이트 지급,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받습니다. 이 구조는 시장조성자의 활동이 단기적 투기나 시세조작이 아니라 공익적 유동성 공급이라는 전제 위에서 설계된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전통 시장에서의 시장조성 행위는 명확히 허용·감독됩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시장조성자의 정상적인 호가 제공을 시세조종 행위의 예외로 인정하며, 한국거래소는 시장조성자의 호가 패턴, 거래 내역을 상시 모니터링하여 불공정거래로 변질되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또, 재무건전성과 내부통제 능력을 갖춘 증권사만이 시장조성자가 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설정함으로써, 시장조성 행위가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 하에서 시장조성자는 단순히 거래량이나 가격을 부풀리는 세력이 아니라, 시장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공공재 공급자로 기능합니다. 지속적인 호가 제공으로 거래량이 늘고, 시장 참여자가 많아지며, 가격 발견이 보다 부드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 시장의 유동성과 신뢰도는 구조적으로 개선됩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의 개념은 존재하지만, 전통 금융과는 규율과 관행이 상당히 다릅니다. 중앙화 거래소(CEX) 기준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시장조성 모델이 나타납니다.
첫째, 거래소가 직접 호가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 이 경우 거래소는 자체 자본이나 별도 법인을 통해 특정 코인의 유동성을 보강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알고리듬 트레이딩 엔진을 활용해 외부 가격 지표, 다른 거래소 호가, 선물·현물 가격 관계 등을 고려해 자동으로 호가를 조정합니다.
- 다만, 거래소가 스스로 유동성 공급자가 되는 구조는 이해상충 가능성과 공정성 논란을 수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예외적·보조적 수단으로 제한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원칙적으로는 독립된 시장조성자에게 역할을 위임하는 것이 표준입니다.
둘째, 전문 마켓메이킹 업체와의 계약 모델입니다.
- 글로벌 크립토 시장에는 유동성 공급만 전문으로 하는 트레이딩 하우스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다수의 거래소·프로젝트와 계약을 맺고 거래지원 직후 혹은 거래 부진 종목의 유동성을 공급합니다.
- 프로젝트는 상장 초기 가격이 한 방향으로 폭주하지 않도록 완충 장치를 두고 싶어 하고, 거래소는 최소한의 트레이딩 경험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전문 업체에 마켓메이킹을 위탁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셋째, 프로젝트 팀 또는 재단이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 이 경우 팀이 보유한 토큰과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해 호가를 쌓고, 거래지원 초기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보강합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이해상충과 시세관리 논란에 쉽게 노출된다는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탈중앙화 금융(DeFi) 영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유동성 공급 메커니즘이 등장했습니다. 유니스왑(Uniswap), 커브(Curve) 등 AMM(Automated Market Maker) 프로토콜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조성자 대신, 수학적 가격 공식과 온체인 풀에 예치된 자산 규모가 가격과 유동성을 결정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개인 투자자도 LP(유동성 공급자)로 참여해 수수료를 공유할 수 있고, 프로젝트·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소수 전문 시장조성자 중심이 아닌, 개방형 유동성 공급이라는 다른 패러다임이 형성됩니다.
즉, 제도권 안에서 계약·감독 하에 활동하는 시장조성자와, 온체인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AMM 기반 LP, 그리고 비공식적인 ‘시장조작자’는 서로 다른 층위의 플레이어이며, 특히 후자는 시세조종과 혼동되기 쉬운 영역이라는 점에서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화 가상자산 거래소(CEX)에서의 시장조성자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크립토 시장은 24시간 글로벌로 열려 있고 뉴스·내러티브·자금 흐름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문적인 시장조성자가 없다면 호가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지거나, 일시적인 대량 주문으로 인해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급등락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중소형 알트코인, 신규 거래지원 자산의 경우 자연발생적인 주문만으로는 충분한 호가를 형성하기 어렵고, 소액의 대량 매수·매도만으로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로 2024년 발생한 무브먼트(Movement) 상장빔 사태는, 유동성 부족이 어떻게 극단적인 가격 왜곡과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시 무브먼트는 유통·거래 가능한 물량은 매우 적어 얕은 오더북 위에서 호가가 형성되고 있었고, 상장빔을 기다리는 매수 수요는 충분히 쌓여 있는 반면, 이를 받아낼 초기 유통량과 유동성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래 차트에서 보듯, MOVE 가격은 기형적으로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무브먼트는 단순한 개별 알트코인이 아니라, 밈코인·거래지원 초기 자산의 극단적인 변동성과 유동성 설계 실패가 만들어낸 투자자 피해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브먼트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 거래지원 모범사례’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내며, 특히 밈코인의 거래지원 요건과 거래지원 직후 유동성 관련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사후적 거래 제한만으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어렵고, 거래지원 전에 거래소·프로젝트·전문 유동성 공급자가 협의해 충분한 초기 유통량과 유동성 장치를 마련했다면 극단적 일시 폭등은 방지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무브먼트 사태는 거래지 초기 구간에서의 충분한 유동성 확보와 합법적·투명한 시장조성 메커니즘이 단순한 가격 통제 장치보다 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LP·MM 제도를 어떻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또한 촉발했습니다.
많은 글로벌 프로젝트 팀은 가격 급변을 완화하고, 투자자에게 최소한의 거래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전문 마켓메이킹 업체에 의뢰해 유동성을 관리합니다. 그러나 크립토 시장에는 전통 금융만큼의 명확한 규정과 감독체계가 부재해, 시장조성자가 제 역할을 하기보다는 시세조작, 거래량 부풀리기 등으로 오해되거나 실제로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마켓메이킹이라는 단어 자체가 업계 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게 되었고, 합법적·건전한 유동성 공급 활동과 불법적 시세조종 행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시장조성자 활동이 제한되는 제도적·법적·실무적 이유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전통 금융시장과 달리,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존재가 거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도입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러 제도적·법적·실무적 제약이 겹쳐 있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첫째, 규제 당국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습니다.
- 현재 감독당국은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조성 행위가 시세조종에 해당될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으며, 현행 법체계에는 주식시장처럼 시장조성 행위를 명시적으로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 따라서 동일한 행위라도 전통 시장에서는 합법적 시장조성으로 보지만, 가상자산 영역에서는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높은 자기매매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둘째, 가상자산 업권법의 도입 초기라는 점입니다.
- 2024년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주로 투자자 보호, 거래소의 이용자 자산 분리보관, 이상거래 탐지, 상장·상장폐지 절차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 즉, 가격에 개입하는 행위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거래소와 특수관계인의 자전거래·자기매매·내부자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 금융에서 이미 확립된 시장조성자 제도를 그대로 이식할 법적 근거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 시장조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악화시켰습니다.
- 국내 가상자산 열풍기였던 2017~2018년, 일부 거래소는 인위적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거나 프로젝트와 결탁해 시세를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습니다.
- 대표적으로 자전거래 의혹 사건 등은 대중에게 거래소가 자기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고, 그 후 거래소 경영진 입장에서는 시장조성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실무적인 제약도 존재합니다.
- 한국에는 아직 가상자산 유동성 공급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라이선스 사업자 카테고리가 없습니다. 전통 금융의 증권사처럼 규율된 기관이 아닌, 정체가 불명확한 해외 트레이딩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시장조성을 도입할 경우, 향후 규제 리스크와 평판 리스크를 모두 거래소가 떠안아야 합니다.
- 또한, 시장조성 계약과 관련된 수수료, 최소 거래량, 가격 안정 의무 등의 구조가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을 경우, 향후 어떤 형태로든 시세관리·이해상충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다섯째, 국내에서는 법인 투자자의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이 그동안 차단되어 있다는 점도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했습니다.
- 전통 자본시장의 시장조성자는 대부분 증권사·트레이딩 회사 등 법인 플레이어인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이들이 원화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거래에 참여할 제도적 통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 이 때문에 해외 기반 전문 시장조성자가 들어오기도 어렵고, 국내 금융투자업자가 가상자산 유동성 공급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과적으로 ‘시장조성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와 ‘그들을 규율할 제도’가 동시에 비어 있는 상태가 이어져 왔습니다.
또한 최근 판례에서는 “일정 범위 내에서 스프레드를 유지하며 호가를 제공하는 정상적인 유동성 공급 행위”와 “자전거래·가격 고정 등 시세조종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어느 수준까지를 적법한 시장조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량적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합법적인 유동성 공급조차 사후적으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고, 이는 거래소와 잠재적 시장조성자 모두에게 보수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친 결과,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시장조성자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아예 그런 활동이 없는 것처럼 운영하는 것을 더 안전한 선택으로 판단해 왔습니다. 그 결과 유동성 공급의 상당 부분은 자연발생적인 투자자 주문에 의존하게 되었고, 중소형 종목·신규 거래지원 종목에서의 호가 스프레드 확대, 슬리피지 증가, 급등락의 빈도 증가 등이 구조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중요성

현재와 같은 제약 환경에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됩니다. 이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시장 건전성 측면입니다.
- 시장조성자는 가격의 급격한 왜곡이나 비이상적 급등락을 완화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합니다. 대량 매도나 매수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일정 수준까지는 시장조성자가 재고를 활용해 이를 흡수하거나 공급함으로써, 가격이 한 번에 붕괴되거나 급등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습니다.
- 특히 거래량이 적은 알트코인에서는 한두 건의 대형 주문이 전체 일일 차트를 왜곡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전문 유동성 공급자가 있다면 이런 우발적 폭주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기적 가격 조작을 억제하고,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둘째, 시장 효율성 측면입니다.
- 시장조성자가 활발히 활동하는 시장에서는 매수·매도 가격차가 줄어들고, 호가창의 깊이가 두터워지며, 투자자의 체결 가격이 보다 예측 가능해집니다. 이는 투자자의 실질 거래비용(슬리피지, 기회비용)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시장 참여를 촉진합니다.
- 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크면 장기 투자자뿐만 아니라 단기 트레이더도 시장 참여를 꺼리게 되며, 이는 시장 유동성 악화로 다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반대로, 적절히 설계된 시장조성 제도는 이 악순환을 유동성 선순환 구조로 바꾸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셋째, 투자자 보호 관점입니다.
- 투자자 보호는 단순히 사기·해킹을 막는 차원을 넘어, 언제든지 공정한 가격에 거래를 종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동성이 부족한 시장에서는 투자자가 위기 상황에서 자산을 매도하려고 할 때, 호가가 비어 있어 큰 폭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보호 부재로 체감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유동성과 상시 호가를 제공하는 시장조성자는, 투자자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시장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보장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중요한 보호 장치입니다.
또한 제도권 내에서 규율된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가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관련 정보 공개, 모니터링, 리스크 관리 체계가 함께 구축됩니다. 이는 음지에서 이뤄지던 불법적인 거래 관행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올리고,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를 비롯한 해외 규제·연구 역시, 특히 유동성이 부족한 신흥시장 환경에서 시장조성자가 가격 효율성 유지와 투자자 진입 촉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실증연구에서도 시장조성 제도 도입 이후 스프레드 축소와 거래비용 감소가 확인된 만큼,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형 시장조성 제도 설계에 대한 시사점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떤 형태의 시장조성은 허용하고, 무엇은 시세조종으로 금지할 것인지”에 대한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합니다. 전통 자본시장에서 이미 축적된 제도 설계 경험을 참고하되, 가상자산 특유의 24시간 거래, 글로벌 연계성, 탈중앙화 인프라 등을 반영해 한국형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방향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격 요건과 라이선스 부여
- 충분한 자기자본, 리스크 관리 역량, 내부통제 체계를 갖춘 법인만 가상자산 시장조성자로 허용하고, 혁신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한정된 범위에서 시장조성자를 시범 도입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유동성 공급업자’ 같은 전용 라이선스 체계를 설계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 전통 금융의 증권사·선물사에 해당하는 가상자산 유동성 공급업자 카테고리를 별도로 두고, 등록·허가제를 통해 감독당국이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입니다.
투명한 계약 구조와 공시
- 거래소와 시장조성자 간의 계약 조건(대상 자산, 스프레드 조건, 최소 호가 수량, 인센티브 구조 등)을 표준화하고, 핵심적인 사항은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방식이 요구됩니다.
-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규율된 유동성 공급이라는 신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해상충 및 시세관리 방지 장치
- 거래소 내부 데스크가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는 경우, 프론트러닝, 내부자 정보 이용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 프로젝트팀·재단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경우에도, 사전에 합의된 가격·물량 범위를 벗어난 시세관리 행위는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규율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단계적·선별적 도입
- 전 종목에 일괄 도입하기보다, 신규 거래지 자산이나 장기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종목 등 특정 구간을 대상으로 파일럿 형태로 시장조성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도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 이 과정에서 거래소·당국·투자자 커뮤니티가 성과와 부작용을 함께 검증하고,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는 단순히 거래량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장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전통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이들의 역할과 한계를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감독하는 체계를 통해, 유동성과 투자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맞춰 왔습니다.
반면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과거의 부정적 사례와 법제 미비, 규제 리스크 우려로 인해 시장조성 활동이 사실상 음지화·위축된 상태이며, 그 비용은 넓은 스프레드, 낮은 유동성, 잦은 급등락이라는 형태로 투자자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향후 한국형 가상자산 제도가 성숙해질수록,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를 어떻게 규율 속에 편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될 것입니다. 건전한 시장조성자는 가격 안정과 투자자 보호, 그리고 글로벌 거래 환경과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적법한 시장조성자 제도를 갖추지 못한 국가의 거래소가, 풍부한 유동성이 모여 있는 글로벌 주요 장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규제 편의의 차원을 넘어 한국 가상자산 산업의 생존·경쟁력과 직결된 과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시장조성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접근에서 나아가, 어떤 형태의 유동성 공급을 허용하고 어떤 행위를 시세조종으로 규정할지에 대한 세밀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